독립 운동가의 아들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김신 전 주 중화민국 한국대사는 1922년에 중국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와 최준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수립된 망명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다.

아버지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다녔고, 어머니는 김신이 2살 때에 돌아가셔서 형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 했으며, 늘 궁핍한 생활에 시달렸다. 더구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과 협력하여 항일전을 벌이면서 남경, 장사, 중경 등지로 옮겨 다녀야 했던 까닭에 임시정부의 가족들도 유랑생활을 하여야 했고, 그때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는 항일운동을 위해 협력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1943년, 김구는 장제스를 만나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완전 독립을 주장해 달라 요청했고, 장제스는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아버지와 장제스의 인연은 그 아들 김신으로 이어졌다. 1962년, 김신은 장제스 총통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중화민국에서 대한민국 대사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중국 공군이 되다

김신은 충칭 칭무관의 중앙대학 부속 고급중학을 졸업하고 서남연합대학(베이징대, 칭화대, 난카이대 3개 대학의 전시 연합대학)에 입학했다가 일제와의 전쟁이 격렬해지자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1944년 쿤밍의 중국 공군군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6개월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후 인도의 라호르로 건너가 초등 비행훈련을 받았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김신은 조국의 해방을 맞아 아버지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을 곁에 두는 것보다는 대한민국의 젊은 인재로 성장해 줄 것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김신은 1946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랜돌프 공군기지에 입학하여 비행훈련을 받았다.

1948년 6월, 김신은 랜돌프 비행학교를 졸업했다. 중국으로 돌아온 뒤 같은 해 8월에 난징에 있는 중국 공군군관학교를 졸업했다.























한국 공군의 가장 빛나는 별

김신은 1948년 대한민국 육군항공대에 입대했다. 이듬해 1949년 10월 1일 창설된 한국 공군의 초대 멤버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중국 공군으로서 비행훈련을 받은 덕분이었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 때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면서 한국 공군의 위상을 드높였다.

1960년에는 제6대 공군참모총장으로 취임했다. 김신은 1961년 한국의 공군참모총장 자격으로 중화민국 총통부를 방문했다.

그때 장제스 총통은 중국 공군 출신이 한국 공군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며 매우 기뻐했다.























주 중화민국 대사가 되다

김신은 공군참모총장의 임기를 마친 뒤, 1962년 제6대 주 중화민국 대사로 임명되었다. 1970년까지 8년 동안 대사로 재임하면서 중·한 우호협력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1965년에는 ‘한중우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상호 존중과 신뢰 관계를 공식화했다.

김신 대사는 두 나라가 과거의 우의를 잊지 않고 미래를 위해 함께 손잡고 나갈 것을 바랐다. 과거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해 주었던 중화민국의 여러 인사들을 예방함으로써 항일투쟁의 기억을 공유하고 미래를 향한 동맹관계의 초석을 다졌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에도 적극 발 벗고 나섰다. 장경국 선생과 천치촨(陳啓川) 가오슝 시장의 도움으로 쭤잉에 한국 교민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과거의 인연을 미래로 이어가다

사람과 역사와 맺은 인연은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는 바뀌어도 각자의 기억 속에 스며들어가고 간직되어 있는 것이 인연의 힘이다.

김신의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람과 장소는 중화민국과 그곳의 사람들, 기억들이었다.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어 자신에게 전해졌고머지않아 다음 세대들에게도 끊이지 않고 이어질 인연이었다.

개인의 기억과 함께 국가의 역사에도 큰 자취를 남겼던 김구 가문과 중화민국의 인연이 더욱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를 희망했다. 이를 위해 2016년 국립대만대학교에 『김신포럼』과 『김구석좌교수』를 개설했다.

이 프로그램은 2017년 10월부터 시작된다. 앞으로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의 상호 이해 증진과 교류 촉진은 물론 미래지향적인 우호 협력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벌여나갈 것이다. 이제 인연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연혁
1922~2016

1922  중국 상하이 베이러루 융칭팡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최준례의 차남으로 출생

1934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따라 자싱을 거쳐 난징으로 이동

1935  난징 다중차오소학에 다님

1937  난징 안후이중학에 다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따라 우한을 거쳐 후난성 창사로 이동

1938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따라 광저우로 이동. 다시 광시성 류저우로 이동

1939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따라 쓰촨성 충칭으로 이동. 칭무관의 중앙대학 부속 고급중학에 입학

1943  중앙대학 부속 고급중학을 졸업하고 쿤밍에 있는 서남연합대학에 입학

1944  윈난성 쿤밍의 중국 공군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기초군사훈련 수료

1945  인도령 라호르로 이동하여 비행훈련,일제 패망,인도양, 홍해, 대서양을 거쳐 미국으로 이동

1946  미국 텍사스주 랜돌프 비행학교에 입학하여 훈련

1947  미국 랜돌프 비행학교 졸업, 중국 공군군관학교 졸업 및 중국 공군 제대, 한국으로 귀국

1960  제6대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 임명

1962  주 중화민국 대사 부임

1970  주 중화민국 대사 사임하고 한국으로 귀국

1971  한국 교통부 장관 임명

1976  대한민국 국회의원

1986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

2002  백범김구기념관 관장

2016  국립대만대학 김신포럼 및 김구석좌교수 개설 협약 체결